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시카가 다카우지 (문단 편집) === 가마쿠라 막부의 멸망과 겐무 신정 === 그때 간토의 유력 무사 중 하나였던 [[닛타 요시사다]]가 거병하자 자신의 적자인 센쥬오(뒷날 2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아키라]])를 파견[* 아버지의 대리로 파견되었기 때문에 장성한 인물이었을 것 같지만 이 당시 센쥬오는 '''3세'''였다. '''다카우지를 대신해서 어린 적자가 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상징적인 의미.]하여 막부 타도의 병력 결집에 공헌했고, 닛타 요시사다 등과 함께 가마쿠라를 공격하여 결국 [[막부]]를 쓰러뜨리는 데 성공했다. [[가마쿠라 막부]]가 소멸하자 고다이고 덴노는 이른바 '[[겐무 신정]](建武新政)'이라는, 덴노를 중심으로 한 율령 국가로의 복귀를 꾀했는데, 다카우지는 이 겐무 정권에서 공신으로서 높은 관직과 영지를 하사받았고, 덴노의 휘인 '다카하루'에서 편휘를 받아 尊氏로 개명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다. 그러나 다카우지는 처음부터 헤이시였던 호조 정권을 쓰러뜨리고 겐지의 적통인 자신의 가문이 중심이 되는 정권 수립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고다이고와는 당연히 반목하게 되었고, 겐무 신정에서는 권력의 핵심에서 벗어나 무사 계층의 지지를 끌어모으는 데 힘썼다. 그 와중에 고다이고의 아들 모리요시 친왕(護良親王)과 크게 대립했고, 모리요시는 다카우지를 암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다카우지는 고다이고의 첩 중에 자기의 소생인 츠네요시 친왕(恒良親王)이 덴노에 오르기를 바라던 아노 야스코와[* 고다이고 덴노가 붕어하고 뒤를 이은 고무라카미 덴노가 아노 야스코 소생의 황자였다.] 결탁하여 모리요시 친왕이 황위 찬탈을 시도했다는 죄를 씌우고 포박하여 유폐해 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호조 잔당들과 친왕이 연계하지 못하도록 부하를 보내 암살해 버린다. 그러던 중 [[1335년]] 가마쿠라에 있던 호조 정권의 잔당들이 [[호조 토키유키]]를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키자 다카우지는 덴노의 칙명도 없이 출병하여 이 반란을 진압[* 막부 개설은 이 뒤의 일이지만 고다이고 덴노는 이때 다카우지가 칙명도 없이 그냥 출병해 버리자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정이대장군 직함을 내렸다. 전장에서는 장군의 명령이 1순위이고 천자의 조칙은 다음이라는 논리.]했고 그대로 가마쿠라에 눌러앉아 자기 멋대로 수하 무사들에게 은상을 내렸다. 당연히 고다이고 덴노는 다카우지에게 귀환 명령을 내리지만 다카우지는 이를 무시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